(창 38-42장)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창 39:3)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창39:23b)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창41:16b)
오늘은 하나님의 사람 요셉을 하나님께서 범사에 형통하게 하신 대목이 와 닿았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범사에 형통하게 되었고 그의 주인 애굽 사람 보디발도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심을 알아차릴 정도로 형통하게 하셨다고 하니 참 부러운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형통이라는 말을 떠올리면 아무 고난도 아무 나쁜 일도 없는 것이 형통일 것 같은데, 요셉의 삶을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치 않았습니다. 남들이 봤을 때는 그가 애굽의 총리가 되기 전까지는 형들로부터 배신당하고, 노예로 타지에 팔려오고, 강간의 죄목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하였으니 오히려 불통의 삶을 사는 것과 같이 보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어떠한 상황 속에 처하든지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 (41:38) 그때 그때 지혜롭게 처신하고, 주어진 일을 정직하게 하며, 성실하게 주인을 섬기니, 남들은 그를 불행한 자로 보지 않고 도리어 형통한 자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요셉의 속사정과 마음은 형들을 만나 자신이 요셉임을 밝히는 긴 과정에서 보면 그 또한 형과 과거에 대한 많은 아픔과 상처와 외로움과 힘듬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인간적인 아픔과 상처에 갇히지 않았고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이 하신 일이고 자신의 삶이 하나님의 계획과 다스림 안에 있었음을 그는 이미 압니다. 형통하다는 것은 비록 인간적인 상처와 아픔이 뒤따를 수 있지만 하나님께 쓰임받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결과인 것 같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11:1) 라는 말씀처럼 요셉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바라던 형통의 실상을 보게 되고 보이지 않던 형통의 증거를 얻게 된 것이 아닐까요?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과 늘 교통하며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또한, 자신이 드러날 수 있는 상황이 와도 내 지혜와 내 자신의 능력을 뽐내지 않으며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이 왔고 하나님이 하신다고 고백하는 겸손함이 있어야함도 깨닫습니다. 아울러, 하나님의 사람은 상황을 바라보지 않고 어떤 상황에 닥치든지 하나님의 주권과 다스림을 인정하며 그 상황 가운데에서 주께 하듯 최선을 다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요셉의 삶을 통해 저 또한 그러한 하나님의 사람 요셉의 삶의 태도를 본받기 원합니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이 나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형통함을 보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들일지라도 나의 형통을 보고 하나님께 돌아오고 하나님의 선한 영향력을 흘려보내어 보디발의 집과 소유에 까지 복을 내리신 것처럼(39:5) 다른 사람까지 형통케하는 능력의 사람이 되길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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